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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sar1... | 00:31 | 추천 21 | 조회 73

조선 지배층이 모두 훈민정음에 반대했다는 건 착각. +76 [7]

루리웹 원문링크 https://m.ruliweb.com/best/board/300143/read/68103702

자꾸 보면 훈민정음으로 백성들이 문자를 알면

기득권이 어쩌고 하는 빡대가리들이 너무 많은데


그 애초에 훈민정음이 나오기 전에도

하층민에서 과거 급제자는 40퍼센트 가까이 나오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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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반 백성들이 대부분 글을 모르지도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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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연분9등 전분6등법의 제정을 위해

공법 제도의 특성을 공시하고 이를 17만명에게

설문조사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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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 즉, 양반과 일반 백성을 구분해서 찬반을 나누어 조사했음. 심지어 여론 조사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왜곡과 변조를 막기 위해 


" 지금 공법은 시행하지 않더라도 후세 자손들은 반드시 재론할 것이다. 그러니 미룰 수 없다. 과인은 경상·전라 양도의 백성 중 공법의 시행을 희망하는 자가 3분의 2가 되면 우선 이 양 도에서 시행할 것이다." (<세종실록>)


법안을 보류하고 재차 투표까지 고민함. 


조세를 부담하는 일반백성들이 아예 글을 모르는 소위 일자무식이면 불가능한 이야기.


거기다가 훈민정음 창제 이전에 이미 삼강행실도. 소학 등 꾸준히 유교서적을 보급했고 향교를 비롯한 교육 시설은 양인이면 누구나 갈 수 있었음.


즉 백성들이 전부 글을 몰랐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건

 애시당초 엄청난 오류.



그리고 성리학 ㅡ 유교에서는 일반 백성을 교육하는 것을 굉장히 중시하는데 문자를 모르는데 교육이 될리가.



다만 한자가 어렵고 중국말과 우리말이 다른데 그걸 한자로 표현하면 문자가 맞지 않아 뜻이 전달되지 않으니 이를 통합하고 일치시키기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했고


정창손이나 말도 안되는 논리로 반대했지


최만리의 반대 상소는 외교 문제. 정무 돌보지 않음. 

아픈데 비밀리에 만듦. 같은 목적으로 이미 이두가 있는데요.

라는 나름의 근거를 제시했으나 세종이 반대를 찍어누른 거.


실제로 당시 양반계층이 훈민정음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는


반대 상소 올린 최만리와 그를 따른 학사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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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지배계층이 훈민정음의 편찬사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데서 그 위상을 알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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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금 안에서 언문(諺文)을 내다 읽으며 어마법(御馬法)을 민발에게 물으니, 민발이 대답하는 것이 자못 성지(聖旨)에 맞으므로, 임금이 즐거워하고 술을 올리게 하였다. 또 최항(崔恒)·김국광(金國光)·노사신(盧思愼)·성임(成任) 등에게 명하여 언문으로 어마법(御馬法)을 번역하게 하고, 신숙주(申叔舟) 등에게 명하여 잘못된 곳을 지적하게 하니, 신숙주 등이 지적하지 못하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이(耳)자가 잘못 되었는데도 경(卿) 등은 알지 못하느냐?"

하고, 드디어 잔술로써 벌(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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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때는 아예 술자리에서 언문을 읽으면서 번역놀이도 했고



이후에 연산군 대에 투서 문제. 중종시기 언문청 혁파 등을 

거쳤고 한자보다 쉽다보니 언문을 익히면 한자에 대한 숙련도가 부족해지는 현상.


애초에 모든 서책이 한자로 되어있고 중국과의 외교나 중요한 대외 관계 문서는 전부 한자를 쓰다보니 지배계층인 양반 층은 배우기 쉬운 언문보다 자신들이 실제 정무에 쓰는 한자를 중시할 수 밖에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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